CHUN HWAN KIM
가나아트갤러리 기획 초대전
9월 24일 - 10월 7일 2008년인사아트센터
언제부터인가 하루도 빠짐없이 내 우편함이 반가운 친구나 가족의 편지 대신에 수많은 종류의 인쇄물로 가득 채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일상생활은 소비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너무나 다양한 생산물들과 정보 매체들, 특히 컴퓨터의 보급과 인터넷 사용의 일반화에 의한 이미지들의 홍수 속에 서서히 잠식되어가도 있다. 내 작업은 현재 소비주의로 치닫고 있는 우리사회가 새로움이라는 이름 하에 시시각각으로 만들어 내는 수많은 정보 그리고 이미지들의 생산 소비와 축적이라는 새로운 메카니즘이 초래한 일상에서의 문화적 혼돈에 대한 반응이다.
내 작업을 구성하는 형식적인 방법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콜라주 기법이다. 붙이기(coller)는 재현의 공간 속에 현실의 파편들을 끌어들여 현실과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시 말해서 이 세계의 오브제들과의 지속적인 상호관계 속에서 콜라주를 하는 당사자, 즉 나와 현실세계 사이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시키는 것이다. 광고 인쇄물과 잡지는 지금 현재 우리 일상의 단면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오브제이다. 그 안에는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즐기는 우리들의 생생한 모습이 담겨져 있다. 나는 그것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싶다. 내 콜라주들은 단순한 개념의 예시나 감정의 투사가 아닌 일상의 다른시간들 속에서 현실을 인지해 나가는 한 방법이며 사회 속에서 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어떤 구체적인 이미지를 오려 내거나특수한 이미지들의 부분을 차용하여 화면을 재구성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콜라주와 내 작업은 구별된다.
우선 주변에서 얻어진 광고 인쇄물과 잡지들을 모은다. 모아진 인쇄물과 잡지를 한 장씩 뜯고 구겨 나무로 만든 판넬 위에 빽빽이 부쳐 일정한 두께를 가진 종이 덩어리를 만든다. 종이를 구기는 것은 종이의 변형과 함께 그 안에 담겨진 이미지들을 파괴시키는 작업이다. 이렇게 변형된 이미지들의 파편들을 숨막힐 정도로 판넬 위에 집적시켜 종이에 인쇄된 이미지들의 상호 간섭과 뒤섞임을 통해 이미지의 상쇄와 의미의 감소를 증폭시킨다. 판넬 위에 종이를 부치는 과정은 화면의 구성이라는 측면보다는 구겨진 종이들과 나와의 조응이다. 대결이 아닌 상호 교류의 과정인 것이다. 종이가 하나씩 부쳐지면서 내 자신의 호흡과 함께 종이들이 만들어내는 자체의 형태들이 판넬 가득히 생성되기 때문이다.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연에 모든 것을 떠맡기지도 않는다. 오히려 종이 덩어리들이 어떤 형태를 만들어 내도록 한다. 이러한 우연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화면의 시각적 자율성과 다양성을 부여한다.
표면 절단은 내 작업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인데 이것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제재소에서 거대한 자연 원목들이 기계톱에 의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는 과정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것에 기인한다. 그것은 절단과 삭제를 통한 흔적과 변신의 과정이다. 즉 파괴가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절단은 작업 과정 중에 일어난 종이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콜라주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던 여러 흔적들을 외부로 불러내는 것이다. 절단은한 화면 안에 겉과 속, 안과 밖을 동시에 보여주어 둘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결과적으로 절단은 외부 세계에서 내부세계로 가는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 콜라주들은 종이의 다양한 움직임과 종이의 본질적 물질성이 살아 숨 쉬는 소박한 안식처이다. 잘려져 나간 종이들이 우리의 시선을 내부로 인도할 때그 절단면 주름의 파장들은 표면의 흔적들과 함께 퍼져나가게 한다. 이러한 주름의 파장은 기억(종이의 물질성과 행위의 반복)을 불러들인다. 결국 내 작업에서의 콜라주들은 기억의 공간이다. 이 기억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진정한 일상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