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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ungmi is featured in an Artvoices Magazine review


2월 6일 2010년
Lee Sungmi is featured in an Artvoices Magazine review Click here for Ding Ren's article about Lee Sungmi

우리 모두는 이를 닦는다던지, 신발을 신거나, 그릇을 씻는 매일 행해지는 의례적인 일들을 한다. 몇몇 일들은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어있다. 하지만, 몇몇 다른 일들은 개인적인 기분이나 생각, 상황에 따라 변하는 특이한 것들이다. 이런 개인적인 일들은 내적인 심리에 따라 달라지고, 하루 하루를 다르게 만드는데 기여한다.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이성미 작가의 작품들은 이런 반복적인 일상과 개일적인 일 들 사이에 있다.
이성미 작가는 그녀의 하루 하루 여행에서 남겨진 흔적의 물건들을 모은다. 6년 동안 그녀는 길에 버려져 있는 강화유리 파편들을 모아왔다. 볼티모어에 위치한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에서 석사학위를 받을때부터 시작해 이 작가의 새로운 동네 브루클린에서도 계속해서 유리조각들을 모았다. 폭력적인 행동에서 남겨진 유리조각들을 주움으로써 이 작가는 쓰레기가 될수 있는 것 들을 재활용 할 뿐만 아니라, 2개 도시들의 유사점을 그리고 있다. 볼티모어와 브루클린의 폭력성 그 자체는 다를지 몰라도 그것의 존재적 흔적은 똑같기 때문이다.
2008-9년작(作) 'Melting It, Melting Me'에서 이성미 작가는 유리 파편들을 이용해 천장에 메달린 종유석 같은 조각을 만들었다. 이 작품 제목은 작품을 만드는 그녀의 과정을 암시한다. 조각 조각 작은 유리조각들을 하나의 큰 모형을 만드는 것은 일종의 개인적 치유가 된다. 반복되는 작업은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 주고, 불안함을 녹여준다. 개인적 치유와 공격적인 폭력성이 병치될때, 이 작품은 이중성을 갖게된다. 치유가 공격과 함께 하나의 독립체로 어울어 지면서 우리 모두가 사랑과 고통 모두를 체험하듯 일상 현실의 삭막한 묘사가 된다.
이성미 작가의 또 다른 수집물중에 하나는 한달동안 모아온 나뭇가지들이다. 그 나뭇가지들을 사용해 이 작가는 1년에 거쳐 실제 크기의 나무를 투명 테이프로 이어 만들었다. 'Re-Birth' 란 제목을 가진 이 설치 미술은 중대한 자연적 대상에게 예상밖의 공허한 관점을 준다. 나무몸통을 둘러싸기 위해 이용한 투명 핀들이 투명한 흙을 생성하는 효과를 더해준다. 반투명한 물체들이 자연적으로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맴도는 방법을 이 작가는 나타낸다.
이 투명한 나무의 제목 'Re-Birth'는 또한 이성미 작가의 가장 일반적인 주제중에 하나를 의미하기도 한다. 버려진 물체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그것이 새로운 생명을 가질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작게에게는 실제 생활의 양상들을 포함하는 것이 개인적인 시각적 기록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필수적인 일이다. 각 각의 물체들은 다른 장소에서, 다른 환경에서 찾아진 것이기 때문에 그녀가 수집함으로써 기억과 감정들도 물체들과 함께 축척된다. 이러한 모든 요인들이 이 작가의 작품들이 개념, 과정지향적 의미, 그리고 유형의 최종 결과물 모두를 가질수 있도록 그녀의 매우 지루한 실행에 보내어 진다.
이것들은 과연 공연인가 그림인가 조각인가? 아니면 설치미술인가? 모든것인가, 아니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것인가? 범주들은 이성미 작가의 작품에선 소용없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품은 가장 흥미로운 관점을 더해주는 수행적인 과정이다.
현재 진행중인 시리즈 'White Air'은 작가가 자신의 스튜디오 창문을 통해 매일 찍은 사진으로 이루어 지는데, 이 작품은 수행이 선두에 서는 작품이다.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촬영되는 사진들은 그녀의 작업실 건물 지붕에서 뿜어지는 흰 연기를 기록한다. 이 시리즈의 사진들은 기록된 패턴을 줌으로써 항상 변하고 수명이 짧은 사실들을 담아둔다. 흰 연기는 매일 다르더라도 사진을 찍는 그 행위는 매일 그대로이고, 이성미 작가가 꼭 수행해야만 하는 기록의 자극이 된다. 모든 이미지가 나란히 전시되었을 때, 육체적 수행은 작품의 결과물과 동등해 진다. 그런 의미에서 'White Air' 은 'Melting It, Meting Me' 와 'Re-Birth' 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후자의 두 작품 들은 유리 조각과 나뭇가지들을 모으는 수행보다는 만드는 과정이 더 중요시 되는 작품들이다. 최종 결과물들은 끝없는 책장의 중요한 북엔드 같은 역할을 한다. 즉, 그것들은 기록의 서사에 끝을 장식한다. 하지만, 이 작가의 의식 절차상의 수집과정은 알 수 없다. 흰 연기가 어떻게 보일지, 또는 어디서 어떤 종류의 물건들을 길에서 만나게 될지에 대한 통제력이 이 작가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통제할수 없고, 그녀의 작품에 구상적인 반투명함을 주고 숨 쉴 공간을 주는 중개물, 즉 기록되지 않은 순간들인 것 이다.
이 기록과 관념이란 개념은 퍼포먼스 예술가에게도, 또 기억을 모으는 기록자같은 사람에게도 계속되는 논쟁의 주제로 남아있다. 이것은 마치 크리스 벌든이 그이 악명높은 1971년 쇼, 'Shoot' 에서 팔에 총 맞은 순간을 생각하는 것 과, 그 여파의 사진 자료들을 보는 것 을 대비하는 것 과 같다. 결정적인,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순간, 총알이 그에게 박혔을때만이 관중의 마음에 구상적인 생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 순간이 가장 필수적인 것이다. 사진은 후기가 되지만, 후기를 위해서 사진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결과물'이란 의문에 대한 해결책들은 역설의 난문제들을 만들어낸다. 1960년대의 개념미술을 예로 들어보자. 로버트 베리나 로랜스 웨이너 같은 작가들은 실제로 유형하지 않은 작품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결과물' 이란 개념을 맞서나가려 했다. 베리는 전파를 방으로 보내고, 불화성 가스를 사막으로 내보내고, 그리고 웨이너가 "작품은 만들어 질 필요가 없다"고 읽는동안 갤러리 문을 닫았다. 베리와 웨이너는 무형의 미술을 강요하면서도 그들의 수명이 짧고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작품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비록 빈 방이나 황폐한 땅의 사진이 다수이더라도 기록은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이성미 작가의 작품의 선적인 자연때문에 개인적 명상이 되고 치유의 과정, 존재의 개념이 되는 그녀의 실행이나 최종 결과물은 자연적인 대응관계가 된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 살고있다는 생각, 단지 감정과 움직임, 또는 냄새를 느끼는 것이 관객들과 이성미 작가 자신 모두에게 필요한 유일한 의례적인 일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