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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FOCUS

KO YOUNGHOON 고영훈

04/10/2021

My work, which is based on the method of illusionary expression, underwent extensive change around 2002. Previously, my focus of view had been on pursuing harmony from a confrontational perspective of reality, based on a dichotomous way of thinking. But later, holistic thinking became my prerequisite, according to which I have searched for origins in a non-dualistic world. Amidst the field of relations and change, I have endeavored to gaze contemplatively at images of the intuitive mind, which emerge and disappear on the sea of energy. With a meditative insight, I intend to continuously search for beings of the world floating on the waves of change, on my plane of perception (the canvas).

“환영의 표현 방법을 근간으로 하는 나의 작업은 2002년을 전후해서 확장된 변화로 이어진다. 이전에는 이원적 사고에 의한 현실의 대립적 관점에서 조화를 추구하고자 했다. 그 이후 근원을 찾아가는데 불이(不二)적인 세계 속에서 전일적 사고를 우선 전제하였다. 관계와 변화의 장 속에서 에너지(氣)의 바다 위에 드러나고 사라지는 직관적인 마음의 상(像)들을 관조적 태도로 응시하고자 했다. 변역(變易)의 물결 위에 떠 있는 세상의 존재들을 내 인식판(캔버스) 위에 명상적 통찰로 모색하고자 한다.”

고영훈(Ko Younghoon, b. 1952-)은 극히 사실적인 필치로 환영과 실재의 간극을 넘나든다. 단색화를 중심으로 추상 화풍이 주를 이루었던 1970년대 중후반대에 등장한 고영훈은 극사실주의 회화 장르에 있어 선구자적 입지를 가지고 있다.

그는 여타의 극사실주의 회화 작가들에 비해 이른 시기인 1970년대 초반부터 군화, 청바지, 코카콜라 등의 일상적인 사물을 사실적인 묘사로 그려냈다. 대중 소비사회를 상징하는 소재인 코카콜라나 노동자 계층을 연상시키는 구겨진 군화의 모습은 당대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었다.

Military Boots, 1973, Oil on canvas
Blue Jeans, 1973, Oil on canvas
Cocacola, 1974, Oil on canvas

그리고 작가는 197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앙데팡당(Indépendant)》전에 <This is a Stone 7411> (1974)를 출품하며 일대기적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그는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의 <이미지의 배반>(1929) 아래에 쓰인 문구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를 정면으로 반박하듯, 사실적인 돌의 이미지를 그리곤 그것을 돌이라 지칭했다.

이는 사실적인 묘사일지라도 그것은 대상의 재현일 뿐, 실재는 될 수 없다는 마그리트의 대전제에 대한 반박이자 그가 일생에 거쳐 천착한 화두의 탄생이었다. 마그리트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통해 회화의 종말을 단언했다면, 고영훈은 “이것은 돌이다”라는 명제로써 회화에 있어서의 환영의 권위를 재정립하고 그 복권을 주창한 것이다.

This is a Stone 7411, 1974, Oil on canvas, 190 x 400 cm

이처럼 고영훈은 환영과 실재라는 회화의 존재론적 조건을 작업의 화두로 삼아 작업해왔으며, 그의 작품에 있어 극사실적인 묘사는 환영의 극한에 다다르기 위한 수단이다. 돌의 이미지와 이를 지칭하는 명제를 동어반복적으로 제시했던 <This is a Stone 7411> (1974) 에서와 같이 그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만이 아닌 그것의 관념이나 본질과 같은 비물질적인 측면을 중시한다.

또한 결국, ‘예술은 재현인가 아니면 그 자체로 실재인가’라는 현대미술에서의 딜레마를 짚어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당대 한국 미술계에서 시도되었던 개념미술과도 궤를 같이 한다. 장르적 일탈을 실천하였던 1970년대의 개념미술가들과는 달리 작가는 회화 양식 안에서 이러한 존재론적 화두의 답을 찾으려 한 것인데, 그가 천착해 온 ‘도자 시리즈’는 그가 치열한 수행 끝에 찾아낸 해답이라 볼 수 있다.

Life- Moon Jar, 2002, Acrylic on plaster, paper, 162 x 128 cm (Left) / Stone Book 8522, 1985, Acrylic on paper, 53 x 42 cm (Right)

고영훈의 도자 회화는 그의 후기 시대를 점철하고 있는 주제로, 책의 페이지를 배경으로 했던 이전 시리즈의 주요 작품인 <Stone Book 8522> (1985) 등과 달리 흰 배경에 오브제와 그 그림자만을 그려 넣어 마치 부유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으로 달항아리를 그린 <생명-달항아리(Life- Moon Jar)> (2002)를 기점으로, 그는 어연 20여 년 가까이 이 화재(畫材)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화면 속 도자기는 실재의 재현이 아니다. 나는 그 소재를 통해 허구의 도자기를 그리고자 한다. 도자기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아름다움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Vessel · Energy, 2021, Acrylic on canvas, 110.5 x 95 cm

작가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도자 회화는 재현을 넘어서 미술의 본바탕이라 할 수 있는 관념으로서의 ‘미’ 그 자체를 그려내려는 시도의 결과물이다. 이를 위해 그는 초기 작업에서는 찰나의 순간에 포착한 도자기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지만, 곧 그것은 사물의 본질, 즉 실재를 담아내기엔 부분적인 인식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에 작가는 동일한 도자를 복수 시점에서 포착한 모습으로 그리거나 상이 흐려진 이미지를 순차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을 통해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공간감과 4차원의 시간성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근작 도자 회화에는 실재를 화면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것의 시간 또한 파악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이로써 그의 회화는 평면의 일루전을 뛰어넘어 공간과 시간을 내포한 관념의 영역으로 전환된다.

Ko Younghoon, Yesterday, Today, and Tomorrow, 2021, Acrylic on plaster and canvas, 132.5 x 185 cm

이러한 근작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내포한 작품이 바로 그의 신작,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Yesterday, Today, and Tomorrow)> (2021)이다. 그는 한 화면에 세 개의 달항아리를 중첩적으로 그려 시간과 공간을 통해 실존하는 사물의 실재, 즉 이데아(idea)적 본질을 포착하고자 한다. 그는 과거, 현재, 미래의 달항아리의 모습을 한 인식판(캔버스) 안에 그려냄으로써 달항아리가 지닌 역사와 공간을 한데 아우른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온전한 달항아리를 그려내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인데, 이로써 그는 환영과 실재를 가르는 이분법을 와해시키며 일원론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먼 옛날 도공이 자신만의 도자기를 빚었듯, 지금 나도 나만의 도자기를 붓으로 빚어낸다”
Ko Younghoon, Full Moon, 2020, Acrylic on plaster and canvas, 152 x 130 cm

이제 그는 재현을 넘어서 실재를 그려내고 있다. 더 이상 그의 회화는 실재하는 사물의 재현, 그 부산물이 아닌 그것이 지닌 역사와 공간까지 한데 어우르는 온전한 이데아에 다가간다. 더 나아가 그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달항아리의 모습을 상상에 의존하여 그려내기에 이른다. 이러한 프로세스를 통해 그려진 <만월(Full Moon)> (2020)은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고영훈의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관조’, 지혜로 모든 사물의 참모습과 나아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를 비추어본다는 의미를 지닌 이 단어는 수십 년간 그림에 몰두하여 마침내 그 본질을 바라보게 된 고영훈을 함축적으로 상징하는 단어이다. 그의 그림은 사물의 본바탕을 꿰뚫어보고 이를 화면 위에 구현해낸 것으로, 끊임없는 관조의 결실이다. 어느덧 칠순에 접어든 그는 여전히 매일 작업실에 나가 캔버스 앞에 자리한다. 오랜 기간 그림의 세세한 부분까지 그려내느라 눈이 침침해졌음에도 붓을 내려놓지 않는 화백은 이제 신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대상의 본질을 통찰한다. 느긋하지만 날카로운 관철(觀徹)의 시선이 담긴 그의 작품이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를 살아내는 이들에게 한줄기 휴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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